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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을 때 (정전)

몇 년 전 이야기이다. (한 3년?)

라오스에서 친하게 지낸 형님 집에서 술을 마셨다.

늘 그렇듯이 만취를 하였고, 밤이 되자 집에 가려고 했다.

 

우기였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그날 저녁에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라오스에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 놀라진 않았지만, 집에 가야 되는 시점에서 정전은 예상 못했다.

같이 마시던 형님도 이미 취해서 자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라 아이폰의 플래시를 켜고 한 동안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콜택시를 타고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취한 상태라 판단력이 좋지 못했다.

비도 많이 오는 날이고, 늦은 저녁이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때 형님 집에서 대기했어야 했다.

 

비가 계속 왔고, 밖은 깜깜했지만 결국 큰길까지 가거나 집까지 걸어가려고 했다.

지금 거리 계산해 보니 약 8km 거리다.

나가면서도 라오스 친구한테 전화를 했는데, 그날따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까지 걷기로 마음먹었다.

걷는 중 1% 남은 아이폰 배터리도 꺼졌다. 

비가 여전히 많이 내리는 거리는 가로등 불빛도 없이 희미하게 길만 보였다.

방향을 인지할 수 없어 계속 걸어갔는데, 예상하고 다른 거리만 보였다.

취한 상태라 무섭다기보다 당황했다.

하지만 계속 걸었다.

 

늦은 시간이고 비도 계속 내리고 거리는 차도 거의 안 다녔다.

집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방향이 맞는지 걱정이 되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량에 히치하이킹도 시도해 보았다.

큰 키에 외국인이 비 맞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면 누가 태워줄까?

 

히치하이킹은 실패하고 계속 걸었다.

힘은 남아있어서 그냥 동틀 때까지 걷다 보면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반대편에서 오는 트럭에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엇? 차가 멈췄다.

배터리 마지막에 걸었던 라오스 친구한테 연락받은 친구가 걱정이 되어서 이 길로 와줬다.

'아 살았구나'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기쁨도 힘듦도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해보라하면 상상만 해도 싫다.

그런데 그때 기억은 아직도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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